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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퍼 오일(Fur Oil)을 써요. 어디에나 발라요. 머리에서 눈썹은 물론 음모에도요.”
피안   Hit : 1640 , Vote : 91        [2020/09/05]




[신시아-Cynthia]
“저는 퍼 오일(Fur Oil)을 써요. 어디에나 발라요. 머리에서 눈썹은 물론 음모에도요.”


신시아는 나에게 각골명심(刻骨銘心)의 추억이다.
그 추억이 얼마나 '념념부망'했으면 나는 이렇게 '뼈에도 새기고, 마음에도 새긴다'로 표현하는 것일까.
한 두가지 예로, 나는 그녀가 매춘업소에서 밤을 새고 새벽녘에야 가까스로, 그것도 잔뜩 술에 절은 몸을 끌고 다락방으로 기어올라오다시피 할 때면, 절대로 내려가서 부축하지 않는다. 몇 번 부축하려고 했더니 벌컥 화를 내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기가 주정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인지, 아니면 그 술김으로 최소한 20명에서 30명의 남자와 살을 섞고 돌아오는 모습이 절인 배추모양처럼 비치는 것을 무지하게나 경계하는 듯 해보여서 그냥 가만히 다락방 앞에 앉아서 휘청거리고 올라오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럼히 내려다보곤 했다.

낮에는 하루종일 쿨쿨거리고 잤다.
나는 그녀가 이불을 다 차던지고 정신없이 자고 있을 때, 몰래 그녀의 몸을 내려다보며서, 내가 그동안 써왔던 백여편에 가까운 수필들가운데서 가장 내놓고 자랑하는 ‘창녀예찬’을 썼다는 사실을 아직까지 한번도 세상에 공개하였던 적이 없다.

그날따라 컴퓨터가 고장이 나 나는 오래만에 육필로 원고를 써내려갔다. 방이 작다보니 그 다락방에 내가 유일하게 들여다놓은 가구로 테블상 하나가 있는데 그 상 곁에 바로 나의 침대머리가 함께 붙어있다. 한참 글을 쓰다가 허리가 아파 의자등받이에 기댄채로 몸을 뻗히다가 그녀의 길기고도 흰 사타구니에 눈길이 꽂혔다.

너무 더워 잠옷 대신 나의 팬츠를 하나 더 위에 입고 드러누워 자고있었다. 그 팬츠속에는 속살이 드러나보이는 구멍이 숭숭한 레지아 블랙 사각팬티가 한 벌 있을 뿐이다. 이 팬티는 내가 빅토리아시크릿에서 직접 사서 그녀에게 선물한 것이다. 맨해튼 헤랄드 스퀘어(Herald Square) 건너 6번가와 5번가 사이 34스트릿트 선상에 본점 매장을 두고 있는 이 속옷가게는 뉴욕의 모든 여자들 뿐만 아니라 창녀들에게도 인기가 이만저만하지 않다.

나로 말하면, 그냥 자주 들려가곤 하는 34스트릿트의 코리안타운과 가까운 곳이라 전화를 받고 무심중에 찾아들어갔던 속옷 가게다.
“그냥 아무 곳에서나 빨리 팬티 한 개만 사보내줘.”
신시아는 팬티를 도둑맞혔다면서 전화로 재촉했다.
“어떤 변태새끼 샤워할 새로 팬티를 다 걷어가버렸잖아. 당장 입고나갈 팬티가 없어. 빨리 택배로 보내줘.”
“아, 정말 가지가지 끝이 없구나. 너 나한테 이런 심부름 다 시킨단말이냐.”
내가 화를 냈더니 신시아는 오히려 자기쪽에서 더 난리였다.
“그럼 어떡해? 그냥 홀딱 벗구 다녀?”
“에잇, 팬티 없음 그냥 바지입구 들어가. 아주 홀라당 다 드러낸 것보다는 오히려 꽁꽁 덮어싸고 있는거가 더 매력적이야.”

말로는 이렇게하면서도 나는 혼자 어슬렁거리고 여자들의 속옷 매장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혼자 판단하기는 어렵겠다싶어 팬티 몇 개를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너무 많아서 어떤거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
“응, 삼각은 너무 그렇구 그냥 사각이 좋을거 같애. 레지아로 해줘. 불랙이라 잘 들여다보이지도 않고.”
“구멍이 숭숭한데 뭘 들여다보이지 않는다고 그래. 그거가 다 기어나오겠구만.”
“에휴, 말하는거하고는.” 신시아쪽에서도 킬킬거리고 웃어대느라고 정신없었다. “자기는 글 쓰는거하고 말하는거가 너무 똑 같은거 알어?”
“그냥 사실대로 말하는거잖아.”
“사실두 그렇지, 그거가 뭐야, 징그렇게서리.”
“징그러울 일두 많다. 너한테는 그거가 가장 큰 매력인거 모르나보구나.”
“글쎄, 그거 많은 거 좋아하는 남자들두 꽤 많더라. 근데 난 생리올 때면 진짜 귀찮아죽겠어. 다 밀어버릴가봐.”
“그럼 나랑은 끝장이야.”하고 내가 을러메자,
“알써, 가만 냅둘게. 근데 그거 좀 듣기좋게 다르게 부르는 이름은 없어? 꼭 그렇게 징그럽게 불러야만 해? 신문이랑 책에서는 뭐라구 불러?”
하면서 신시아는 제법 정식이다.
나는 잠깐 멈칫했다.
“글쎄, 음모라고 하면, 그것도 너무 그렇고, 좀 그럴싸하게 아랫도리 헤어라고 하면 어떨까?”
내가 이렇게 제안하니 신시아도 좋다고
“아랫도리 헤어, 진짜 대박이야.”
하고 환성을 질렀다.

그런데 정작 책에서도 신문에서도 그렇게 부르는 것을 아직은 알지 못했다. 얼마전에 해리포터 시리즈의 미녀와 야수의 벨 역으로 유명해진 영국의 소녀배우 엠마 왓슨이 “인투 더 글러스”와의 인터부에서 그 자신의 뷰티 시크릿을 공개할 때, 우리가 그나마도 “아랫도리 헤어”라고 에둘렀던 것을 직방대고 “음모”라고 부르면서 “난 거기다가도 오일을 바르거던요.”하고 공개했다.

“저는 퍼 오일(Fur Oil)을 써요. 어디에나 발라요. 머리에서 눈썹은 물론 음모에도요.”

이렇게 그동안에도 세상은 “너무 빨리, 많이 변하고 있다”고 말하기조차 너무 느리게 안겨오고 있을만큼이나 이미 세상은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어제까지 노 삭스가 유행이던 미국을 뛰어넘어 지금 한국에서는 삭스가 다시 패션이 되어 돌아오는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사람들은 “양말을 신는다”고 말하지 않고 “양말을 입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마치도 “술은 마시고, 담배는 피고”라는 말이 어느날 “술도 먹고 담배도 먹는다”로 바뀌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포스터 모던 시대에서 살고 있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신시아에 대하여 조금만 더 소개하겠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시아라는 별명을 가지고 캐나다 동부 퀘벡주의 대도시 몬트리올에서 거의 5년 가깝게 매춘업에 종사해왔던 그녀와 함께 뉴욕의 한 다락방에서 함께 보냈던 시간은 3개월가량 밖에 안 된다. 2003년 2월, 제2차 걸프전 얼마 뒤, 내가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한동안 휴가를 보낼 때 만나 함께 보냈던 10여일까지 합치면 정확히 101일이라는 시간이다.

신시아에게 반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녀의 이름 때문이었다. 그녀의 소개에 의하면 퀘백에서 태어났던 넬리 아르캉이 자기네 집 동네와 아주 가까웠다는 것과, 자기가 신시아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던 것도, 몬트리올에서는 넬리 아르캉이 매춘할 때 이름이 바로 신시아였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 또한 나 못지않게 아르캉의 숭배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로 하여금 창녀 예찬자기 되게 하였던 이 신시아가 매춘업에 종사했던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었다. 가운데서도 후에 유일하게 나만이 알게 되었던 비밀 하나가 있으니 그녀는 20대 때 부모의 빚 때문에 대학을 포기하고 한 할아버지에게 시집갔다가 후에 가까스로 도망쳐나온 기혼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창녀가 될 생각은 가져보지 못했다.
그런데 술에 취해 다락방 층계로 올라오던 그녀가 갑자기 몇 번 뒹굴었던 적이 있었다. 데굴데굴 아래로 굴러떨어져서는 머리를 층계머리에 처박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술에 취한데다가 너무 아파서 떠는줄 알았는데 입에서는 거품까지 뿜어져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뇌전증 앓았어요.”
나는 몹시 놀랐다. 술 주정하는 줄로 오해하였지만 입에서 거품이 뿜겨져나올 때 의심이 안 들었던 것도 아니었다. 우리 말로 간질병이다. 발작하면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지기도 하고, 의식을 회복한 뒤에도 여러날씩 멍청해 있기도 한다.

이후 병세가 점점 더 엄중해져 더는 매춘도 할 수 없게되자 캐나다로 돌아가버린 신시아는, 내가 출근하고 아무도 없을 때 어지럽던 다락방을 깨끗하게 걷어놓고 나의 테블상 위에다가는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예언자’를 놓아두고 사라져버렸다.

이후 더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어느 시점쯤 되었을 때 나는 우연하게도 연락처에 등록되지 않은 번호로 메시지 한조각 받게되었다. 처음에는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지워버리려다가 그래도 행여나 해서 열어보았더니 이런 한마디가 적혀있었다.

“Congratulations on your birthday”
(생일 축하해.)
‘이건 뭐야? 생일을 축하하다니? 누구 생일이야?’

나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잘못 보내온 생일 축하 메시지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만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이날은 나의 생일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벌써부터 가슴이 후둑후둑 뛰기 시작하였다.

“How do you know when my birthday is ?”
(어떻게 당신이 제 생일이 언제인지 아시죠?)
하고 물었다. 한 참 뒤에야 답장이 날아왔다.
“I'm Cynthia”(나는 신시아예요.)
설마하니 했더니, 정말 신시아였다.

사실 내 생일을 알고 영어로 축하 메시지를 보내올 수 있는 사람은 신시아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나지는 못하고 그냥 메시지를 한통 받게 된 것이 옹근 2년 7개월만의 일이었다.

“It ' s been ages! What have you been up to ?”
(오랫만이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나는 계속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용기가 나지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 무섭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는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먼저 문의했다.

“ Shall we talk on the phone ?”(우리 전화로 이야기해도 되겠어요?)

그러자 신시아는 금방 거절해왔다.
“I ' m not comfortable talking about this on the phone ”(전화로는 이야기 나누기가 곤란해요.)
아, 곁에 전화 내용을 들으면 안 될 남자가 곁에 있나봐.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무렵에 신시아는 다시 보내왔다.

“I miss your touch , your kiss , your smile ”
(당신의 손길과 당신의 입맞춤 그리고 당신의 미소가 그리워요.)
‘전화도 감히 하지못하면서 그리워해서는 뭐하나?’

하고 중얼거리고 있을 때 메시지가 한조각 더 날아왔다.
“ We will be in contact again shortly .”(조만간에 다시 연락 드릴께요.)

이런 메시지를 몇통 주고받은 뒤로부터 지금까지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신시아는 다시 연락해오지 않았다.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나는 메시지를 보내왔던 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이 웬 일이란 말인가. “The mobile number you have entered is invalid”(입력하신 번호는 사용하지 않는 번호입니다.이)라는 전화회사의 녹음 알림이 나온다.

‘아니, 이런 세상에’

나는 자기도 모르게 혼자 역증을 냈다. 누가 듣건 말건 입밖에 소리까지 내면서 욕을 퍼부었다. “에이프릴 보스데이( April Fools' Day)도 아닌데 어떤 자가 이렇게 나를 물먹인단말이냐. 망할자식같으니라구!”
분명하게 메시지를 보내온 이 번호가 없는 번호라고 하니 어디 가서 한바탕 해볼데도 없고 그냥 혼자서 분을 삭이는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한번 겪은 뒤로부터 나는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나의 핸드폰 번호까지 바꿔버리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나는 창녀 신시아를 많이 그리워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밤을 새가면서 그녀가 나에게 선물로 주고 간 “예언자”를 읽었다. 한번 다 읽고 난 뒤에도 종종 손에 들고는 여기저기 펼쳐보면서 아무 페이지에서라도 눈에 잡혀오는 대목을 몇번씩 읽어보고는 그 의미를 곱씹는 재미는 일반 독서의 취미를 훨씬 능가하는 그런 유혹과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나뭇잎 한 장이 노랗게 말라버렸다면, 나무 전체가 알면서도 조용히 입을 다물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대들 모두에게 숨겨진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 아름다운 진실, 그리고 너무 아픈 진실의 이야기다. “예언자”에서 칼릴 지브란은 죄와 벌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의 역해석에 이골이 터있는 사람이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이렇게 리메크해보기도 했다.

“뇌전증을 앓으면서 몸을 팔았던 신시아라는 나뭇잎 한 장이 노랗게 말라버려갈 때, 만약 나만 아니었더라면, 나무 전체가 알면서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는 비난을 듣게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저질렀던 것이 범죄여서 내가 죄인이 되었다면, 나같은 모든 남자들에게 숨겨진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겠나.”

한 백년쯤 지나 나같은 이런 역해석자가 나올줄을 미리 대비라도 했던 것처럼 칼릴 지브란은 “예언자”에서 또 이렇게 말을 던지고 있다.

“먼저 그대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베풂을 행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 되돌아보시오”

이는 남을 도울 때에 그 도움의 진정한 의미가 구경 무엇었는지를 되새기게 만든다. ‘나는 정말 신시아만큼은 진심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그녀의 되살리기 싫은 추억속에서 내가 사라져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언자’속의 칼릴 지브란의 명언대로, 언젠가는 추억으로 되돌아가 다시 어김없이 만나게될 이 모든 이야기들이 결코 나, 또는 그녀의 앞길을 가로막는 돌맹이게 되게하여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대 예언자는 이미 독단해버렸다.
추억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며, 다시 만날 때에 추억은 당신의 희망을 바라고 가는 길에서 반드시 발에 걸리는 돌맹이라고 말이다. 무슨 “추억은 상쾌하다”느니, “아름다운 추억은 귀중한 것이다”느니 하는 보다 긍정적인 명언들도 적지는 않지만 생트뵈브(Charles Augustin Sainte-Beuve, 프랑스의 비평가)의 말을 빈다면, 추억도 식물과 같은 데가 있는 것을 틀림없다.

“추억도 식물도 다 싱싱할 때 심어두지 않으면 뿌리를 박지못하는 것이니, 우리는 싱싱한 젊음 속에서 싱싱한 일들을 남겨놓지 않으면 안된다.”


[끝. 2020.09,04]
[사진설명: 사진은 본문과 상관이 없음을 밝힙니다.]


청설   - 2020/09/05 09:40:09  
'창녀예찬'은 저의 페이스북 2020. 6.24일 자에 올려져 있습니다
청설   - 2020/09/05 09:40:26  
이 이야기는 작년에 출간했던 장편소설 '뉴욕좀비'에서, 편집자의 요청에 의해 삭제되었던 부분입니다. '음모'를 '아랫도리 헤어'라고 표현한 부분 때문에, 이런 구절의 대화가 한국의 도서문화 정서상 '청소년 유해물'로 규제받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페이스북에서 이 정도는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않을가 생각합니다.
청설   - 2020/09/05 10:00:30  
사진은 본문과 상관이 없음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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