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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량영철수필] 수변루야! 수변루
량영철   Hit : 3718 , Vote : 112        [2007/09/12]





   [글 쓴이: 량영철, 소설가, 화룡 출생, 연변작가협회 이사, 로신문학원 강습중]  

   수변루(戍边楼), 일명 도윤루라고도 한다. 동서길이가 20.8메터, 남북너비가 18.6메터. 정남향 2층루각. 광서 34년(1908년)에 착공하여 선통원년(1909년)에 준공되였고 선통 2년 정월에 정식 사용에 교부되였다. 연길에서 지금까지 보존되여있는 청조시기의 유일한 건축물이며 성급중점 보호문물이다.

   청조는 광서 28년(1902년)에 연길청을 두었고 선통 원년(1909년) 2월에는 길림변무독판공서(吉林边务督办公署楼) 동남로 병비도를 연길에 두었다. 수변루가 선통 2년 정월에 준공되자 수변루에서 사무를 보게 되였다. 청조는 이 해에 연길청을 연길부로 승급시켰고 동남로에 소속시켰으며 이 해에 또 연길부를 연길현으로 고쳤다. 민국 3년(1914년) 6월에 동남로관찰서를 연길도윤공서로 고쳤다. 이것이 수변루가 도윤루라고도 불리우게 된 까닭이다.

   기재에 따르면 수변루가 있는 곳에는 꽤 큰 건축군이 있었다. 23760평방메터에 달하는 넓은 면적을 가지고있었고 동서너비 108메터, 남북길이 220메터인 장방형담장이 있었다. 담장안에는 도합 221칸의 집이 있었고 대청을 중심으로 앞뜰과 뒤뜰로 나뉘여있었다. 남북담장에 각기 큰 대문이 하나씩 있었고 동서담장에는 작은 대문이 각기 하나씩 있었다. 수변루는 남쪽 큰대문으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건물이였다. 근 100년의 세파속에서 다른 건축물과 담장은 다 없어지고 지금은 앞뜰안의 2층루각인 수변루만 외롭게 남아있다.

   나는 일전에 갑자기 이 수변루가 궁금해났다. 연길에 하나밖에 없는 청조시기 건물인데…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있을가? 온전히 보전이나 되여있을가? 한번 찾아보고싶어졌다.

   예전에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 부근에 가서 한동안 찾아 헤맸으나 연길의 발전이 하도 빨라 그제날의 수변루는 모습조차 드러내지 않고있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2, 30층짜리 고층건물들이 줄줄이 일어서고있는 요즘 연길이 아니던가.

   별수없이 그 부근에서 오래동안 살아온 로작가 류원무선생한테 전화를 걸어 문의해서야 겨우 그 집을 찾을수 있었다.

   도윤화원(道尹花园).
   광화로 1133호.
   서광골목 7-17번지.

   수변루를 마주서자 나는 순간적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남쪽에는 9층주택, 동쪽에는 10층주택. 수변루는 사면이 담장처럼 고층주택으로 둘러쌓였는데 그중 가장 낮은 주택이 서쪽으로 약간 숨통을 틔운 5층주택이다.

   나는 천천히 수변루앞으로 다가갔다. 수변루는 지면에서 약 1메터가량 꺼져들어가있었는데 아마 지금의 연길의 위치가 그만큼 높아진 탓일것이다. 계단 세개는 밟고 내려야 했다. 당년의 층계아래서나 쳐다보았을 그 위엄과 풍모는 오간데 없고 현재는 콩크리트숲속 네모진 구렁텅이에 빠져있는 처량한 신세였다. 비가 오면 어쩌지? 밑에는 배수구도 없었다.

   44개의 붉은 목각기둥. 수변루는 2층구조로 되여있었는데 1층은 22개의 붉은 원기둥이요 2층은 22개의 붉은 사각기둥이였다. 왜 1, 2층의 기둥을 저렇게 모양을 달리했는지는 알수가 없다. 1층의 22개 원기둥은 모두 일매진 매돌같은 주추돌을 딛고있었는데 근 100년의 비바람세례를 겪었지만 일부 기둥이 허물이 좀 갔을뿐 비교적 완전하게 보존되여있었다. 하지만 칠이 떨어져 볼품이 없었다. 창문이나 기와를 쳐다봐도 수건할 곳이 많아 보였다.

   벽에는 《길림성중점문물보호단위/길림변무독사무서/길림성인민정부 1999년2월6일 공보》라는 간판 두개가 중한 량국어로 커다랗게 붙어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보려고 계단을 내려서봤지만 꽁꽁 잠긴 자물쇠때문에 들어갈수가 없었다. 머리를 들어보니 또 하나의 새로운 현수막이 나의 눈을 때린다.

  《연변에서의 애국주의 장령 오록정(爱国将领吴禄贞在延边)》.

   이건 또 무슨 뜻인가. 오록정이 여기서 사무를 보았다는 말인가?!

   1907년 8월, 일본침략자들은 연변지구를 침략할 목적으로 사이또를 우두머리로 하는 군경을 룡정촌에 파견하여 《통감부파출소》를 설치하였으며 《간도소속미결》, 《간도한인의 생명재산보호》를 들고나오면서 간도의 지리적범위를 연길, 화룡, 왕청 등지로 확대하였다. 통감부파출소는 연변지구를 북도소, 무산간도, 종성간도, 회령간도 등 4개구로 나누고 그 산하에 사와 촌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주요한 교통요로에 14개의 헌병분주소를 설치하였다.

   일본헌병과 경찰이 중국의 주권을 무시하고 연변지방에 침입하여 행패를 부리자 청조정부는 청군련병처감독 오록정을 길림변무방판으로 임명하여 변계를 조사하고 일본측과 교섭하게 하였다. 오록정은 연길에 도착하여 연길변무독판공서를 설치하고 변무를 처리하기 시작하여 1908년 8월에 《연길변무보고》를 집필하였으며 통감부파출소 소장 사이또와 교섭하였으니 올해로 꼭 백년을 맞는 해이다.

   나는 수변루를 빙 에돌아 동쪽켠에 있는 려관이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층집으로 올라갔다. 수변루의 전경을 좀더 잘 보기 위해서다.

   아, 저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수변루의 검은 기와지붕우에는 다북쑥과 같은 잡초들이 군체를 이루어 자라고있었다. 얼마나 오래동안 손이 가지 않았을가? 한심할시고! 그래도 한시기 연변력사의 견증물인데, 청조시기의 둘도 없는 유일한 건축물인데, 이렇게 푸대접을 받고있다니?! 겉이 저런데 안은 어떠랴…

   나는 주문물관리위원회 해당 관계자를 찾아 문의했다. 하지만 거기에도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

   수변루는 1983년 12월에 제3기로 주급중점보호문물로 확정되였다. 이듬해에 주정부는 자금을 투자하여 수변루를 원 모양대로 수리하였다. 수리된후에는 리직퇴직로간부활동장소로 사용되였고 주사지판공실로도 사용되였다.

   수변루는 1990년에 성급중점보호문물로 승급하였는데 그해부터 성에서는 해마다 수변루보호관리비로 500원씩 조달하였다. 헌데 불공평한것은 지금도 여전히 500원이라는것이다. 이 500원으로는 벽을 한번 회칠하는데도 모자란다고 한다. 언젠가 수변루를 림시 빌어 사무를 보았다는 모건물기지개발유한회사가 회칠도 하고 마사진 창문유리도 해넣었으니 망정이지 정부의 손을 바라보다간 그나마도 못할번 했다는것이다.

   수변루의 관리, 보양, 수리 등 문제를 둘러싸고 주인대, 주정협 회의에서 여러번 의견을 모아 건의를 제기하였다는것이다. 수변루에 비가 새는 급한 문제를 해결하고저 주정부에서는 1997년에 자금을 투입하여 원래의 기와를 벗겨서 다시 잘 이어놓았다. 처마와 기둥에도 기름칠을 하였는데 그 이후로는 주정부의 자금투입이 없었다.

   2003년도에 성문물보호관리위원회에 수변루보양수리자금 7만원을 신청하였었는데 2004년에 다시 보자는 대답을 받았지만 여전히 종무소식이라고 한다. 이런 상황은 지금 현재에도 그냥 진행되고있다면서 해당 관계자는 난색을 표했다.

   수변루의 추녀끝, 구름타고 날아오르는듯한 새김무늬가 그때 내 눈에 비쳐든것은 무엇때문이였을가.



오설추   - 2007/09/12 10:57:21  
정부관리인원들이 옛날처럼 과거시험을 치르고 등단한 선비출신들이여야 이런 문제를 중시하겠는지, 참 딱한 일입니다. 그것을 잘 수건해서 관강코스로 개발해도 얼마든지 되겠는데... 정부차원에서 못하면 한국처럼민간차원에서라도 동원되여 중시해야겠는데 그나마 만족들이 다 한족으로 동화되여서 가슴아파하는 사람이 없구먼,
햇빛아래   - 2007/09/12 12:28:59  
량영철 선생님,
전 고향이 연길이지만 솔직히 <수변루>라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고, 오늘에야 선생님의 글을 통해서
이 건축물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많이 무식했나 봅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수변루>란 이름으로 검색해보니 그와 관련 정보가 정말 적고도 적네요...
성급 중점보호문물이라지만, 정부차원 관련 홍보나 소개는 아예 진행되지도 않은 것 같군요.

중점보호 문물이라는 건축물이, 리직간부 활동장소나 한 기업의 사무실로 사용되었다고 하니
정말 혼란스럽군요, 주문화국에서 <수변루>의 역사가치와 문화의미를 어디에 어떻게 두고 있는지요?

단순 청조시기의 유일한 건축물이라는 의미? 아니면, 단순히 희소하면 귀하다는 의미에선지?
마음 아프기에 앞서, 우선은 이 건물의 정확한 역사문화적인 의미가 더 궁금합니다...
주정부는 말고라도,
시정부의 재정으로도 이 정도 지원은 충분히 가능한데 한결같이 다들 외면을 하는 이유가 먼지...
정말 다들 그 정도로 무식하고 그 정도 몇만원 자금이 없어서 그런건 당연히 아니겠고.
장해성   - 2007/09/12 14:24:24  
의미심장한 글을 잘 읽고갑니다.. 연변에 문화재에 대해서는 한번 스쳐지난 정도로 그 현황에 대한 료해가 적었던것을 뉘우치면서.. 연변에 어떠한 등록문화재가 있는가 함께 그 정보를 공유한다는 의미에서 아래의 링크를 소개합니다.. 문화재에 대해서 지금의 전업과 연구에 상당한 관계가 있어 일정한 료해는 가지고있습니다만,, 시간나는대로 다시 상세한 플을 달아볼가 합니다.

http://wht.jl.gov.cn/jlww/t20051116_68017.htm
오설추   - 2007/09/17 12:01:21  
장해성님 고맙습니다 이 링크를 소개해줘서 들어가 보고 오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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